이로 인해 얼굴을 붉히거나 함께 일하기 힘든 적대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인 일상이다.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술을 따르게 하거나 대놓고 음담패설을 해대는 성희롱이 사라진 구태로 여길 수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일터와 사무실, 작업현장에서 성희롱은 발생한다. 다만,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성희롱 인식이 나아진 것은 맞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당하는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탓으로 돌리려는 분위기 역시 여전하다. 특히, 권위주의적 상하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한인 업체들의 성희롱 문제는 예상보다 심각해 소송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한인 업체들에서 발생하는 직장 성희롱 문제를 짚어봤다.
■한인 직장 다수, 공공연한 성희롱
성희롱은 대체로 눈에 띠지 않는 장소나 닫힌 사무실 공간에서 은밀하게 발생한다.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들도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일터의 동료나 부하직원들이어서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는 쉽지 않다.
성폭행이나 추행과 달리 성희롱은 피해를 당하는 당사자의 판단이나 일터 환경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어 피해를 주장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성희롱이다.
하지만, 성희롱이 묵인되어온 오랜 일터 환경과 한인들의 낮은 인식수준으로 한인 업체들의 일터에서는 여전히 성희롱은 공공연하다.
#한 여직원이 짧은 치마와 노출이 있는 상의를 입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들 본 한인 상사는 이렇게 말을 했다. “오늘 섹시한데∼끝나고 데이트라도 하나봐?”이곳은 여러 직원이 함께 일하는 공개된 사무실 공간. 이런 경우 성희롱일까?
여직원이 이 상사의 언행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를 불쾌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반복된다면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여직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인 은행들에서 자주 발생하는 성희롱 사례다. 한인 상사가 부하 여직원에게 “오늘은 옷이 너무 짧다”거나 “블라우스가 너무 얇은 거 아니야?” 또는 “옷 색깔이 야한데?” 라고 한 말 한마디는 자칫 성희롱 시비를 불러 올 수 있다. 이 상사는 인사치레로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여직원의 판단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인 변호사 A씨는 “한인 업체나 업주들의 성희롱 인식수준이 아직도 낮다. 불필요한 언행으로 시비를 자초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며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위협하지 않더라도,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하더라도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가 여부가 성희롱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외모나 옷차림, 몸매 등을 언급해 상대방이 자신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거나 위아래로 훑어보거나 가슴, 엉덩이 등 신체부위를 쳐다보거나 추파를 보내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가장 흔한 성희롱의 한 유형이다.
■성희롱에 무지한 한인 남성들
다운타운의 한 한인 의류업체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이다. 1차 회식 자리가 2차 노래방으로 이어진 상황이었다.
대형 노래방에서 20여명의 남녀 직원들이 모인 유쾌한 회식자리. 취기가 오른 직원들 대부분 노래나 잡담으로 떠들썩할 때 한 여직원의 허벅지에 한 간부급 직원의 손길이 밀고 들어왔다.
이 여직원은 화들짝 놀랐지만 손길을 밀쳐낼 수는 없었다. 분위기를 깨는 것이 두려웠다. “내 허벅지에 부장님의 손이 훅 들어왔어요, 반항을 못하고 있으니 점점 스킨십 강도가 세졌어요. 수치스럽기도 하고 분위기를 깰 수도 없어 모른 척 했어요” 하지만, 이 여직원은 이 일이 있은 뒤 회사를 그만뒀고, 변호사를 통해 노동당국에 제소했다.
이 업체는 그만둔 여직원이 회사에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성희롱을 조작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고서야 사건을 종결지을 수 있었다. 가해 간부 직원에게는 고강도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성추행에 가까운 사례지만 한인 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회식자리에서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성희롱 상황이다. 한인 업체들이나 간부급 남성 직원들이 얼마나 성희롱 문제에 무신경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가슴이나 엉덩이 등 신체 특정부위를 만지거나 만지도록 강요하는 행위, 명백한 성희롱이다.
■“도우미 노래방 회식, 성희롱 아닌가요?”
#“사장님이 도우미 나오는 노래방 회식을 좋아한다. 여직원들을 앞에 앉혀놓고 도우미 여성과 블루스를 추거나 스킨십을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너무 불쾌해요.”
#“동료나 상사가 카카오톡에서 받았다며 음담패설에 가까운 글이나 수치스러운 사진 또는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이것을 카카오톡으로 보내 기분이 상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도우미 여성이 나오는 노래방에서 회식을 하는 겁 없는(?) 한인 업주들이 드물지 않다. 음란한 공연이나 영상이 나오는 장소에서 회식을 해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나 좋아하나?” 일방적 구애도 성희롱
한 한인업체 여직원들은 치근덕거리는 한 간부를 ‘환자’로 부른다. 이 간부는 여직원들의 일상적인 친절을 호감으로 착각, 망신을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예의나 존중의 표시를 호감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들의 불쾌함을 이 간부는 알지 못한다.
완곡한 거절을 호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각한 인식 부족이다. 여직원들이 이 간부의 행동을 성희롱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모르고 그랬다”고 변명을 한들 통하지 않는다. 피해 여직원의 입장에선 모욕적일 수 있다.
■무신경한 한인업체들, 소송당하기 일쑤
성희롱의 심각성을 알지 못해 소송을 당하는 한인 업체나 업주들이 의외로 많다.
#한인타운에 사무실이 있는 D사. 2년 전 여직원으로부터 성희롱 소송을 당했다. 이 업체 간부의 끈질긴 구애에 시달리던 여직원이 이 간부와 회사를 상대롤 소송을 제기한 것. 이 간부가 성적인 신체접촉이나 음담패설을 한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는 데이트 신청으로 받은 고통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렌지카운티 한인업체 K사도 한인 여직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여직원의 남성 동료가 음란 사진을 첨부한 이메일을 반복적으로 발송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기업 Y사의 LA 지사 간부 G씨는 성희롱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여성 인턴과 출장을 갔다 호텔방에서 인턴 여성의 가슴을 더듬은 추태를 벌이다 인턴의 보고로 해고된 것.
#한인업체 K사 한 간부는 2015년 연말 회식에서 발생한 여직원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소송을 당했다. 회식 중 여직원을 강제로 끌어안고 다리를 만졌다. 여직원에게 막무가내로 사랑을 고백하고 속옷을 선물로 보냈다 피소된 한인 남성도 있다.
#히스패닉 여직원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상습적으로 더듬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소송을 당한 한인 업체도 있다. 히스패닉 여직원들이 무려 7년간 한인 사장과 간부들이 가슴과 엉덩이를 더듬는 등 성추행을 하고 신체에 대한 성적인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
■성희롱 배상금에 파산한 한인업체도
성희롱 소송 때문에 파산신청을 한 한인 업체도 있다. 직원이 채 20명도 되지 않은 이 영세업체는 사장이 여직원에게 성적인 신체접촉을 하다 소송을 당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회식자리에서 사장이 직원에게 신체 일부를 노출해 결국 배심원 재판까지 가는 소송이 벌어졌다”며 “배상액이 너무 커 어쩔 수 없이 파산신청을 했다”고 전했다.(본보 6월 5일자 보도)
성희롱은 권위적인 직장에서 발생하기 쉽다. 직장 내 권력관계가 위계적으로 작동하는 조직문화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성희롱은 직위를 이용해 피해 여성에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암시나 전제가 깔린 비열한 행위다.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이유다.
■미국 직장도 예외 아냐..3명 중 1명이 피해
미국 직장도 예외가 아니다. ‘코스모폴리탄’이 미국인 직장 여성 2,235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장인 여성 3명 중 1명이 직장에서 또는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81%가 ‘언어적 성희롱’피해를 호소했고. 41%는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나 치근덕거림’을 당했다. 25%는 야한 문자나 이메일을 남성 동료로부터 받은 적이 있었다. 성희롱 가해자는 75%가 남성 동료였고, 49%는 남성 고객들이었으며, 38%는 남성 상사였다. 업종별로는 식음료 및 호텔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이 42%로 가장 많았다, 소매업계 여성들도 36%가 성희롱을 경험했으며, 과학기술 업종 피해도 31%였다. 심지어 법률이나 교육관련 업체에서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미국인 여성도 각각 30%, 23%였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를 회사측에 보고한 여성은 29%에 불과했고, 71%는 피해사실을 침묵했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