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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 Law] 영어도 안 되고 한국어도 안 되고
김해원
변호사
이민 온 지 오래된 많은 한인이 털어 놓는 고민은 영어도 제대로 안 되고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다는 불평이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미국에서 농담으로 '바이링구얼'(Byelingual)이라고 부른다. 즉, 두 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바이링구얼(Bilingual)을 패러디해서 두 언어를 다 구사할 수 있지만 둘 다 생각이 안 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한인 클라이언트들에게 법적용어를 설명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영어로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들고 한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서 한국어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데포지션(선서 증언)이나 재판에서 한국어 법정 통역사를 통해 한국어로 번역해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 클라이언트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노동법 용어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나 한국어 용어들이 제한되어 있을 경우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언어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구사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퇴보하고 있고 특히, 2세들의 경우 한국어를 잘 하기 힘든 현실이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린 주역으로 꼽히는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36)는 영국에서 한국어를 배운 지 3년만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할 수 있었다. 스미스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2016년 영국의 권위있는 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공동수상한 번역가로,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런던대학교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또한, 걸그룹 뉴진스의 베트남계 멤버인 팜하니는 최근 한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서 한국어로 '아이돌 따돌림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증언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하다. 며칠전 들렸던 LA코리아타운의 ‘마포깍두기’ 식당에는 한국의 신사동에서 몇 년 살았던 백인 여성이 유창한 한국어로 은대구 조림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5일과 6일 부에나파크 소스몰에서 열린 '2024 미국 한국유학박람회'에는 4000여 명의 미국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방문해 장사진을 이뤘다. 그리고 USC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는 블레이크 레빈스는 지난 8일 열린 '2024 미주 한국어 시낭송 대회'에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낭송해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이렇게 미국에서 K팝과 영화,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부상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타인종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미국 외에도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세종학당의 경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수강생 수는 전 세계적으로 21만 명에 달한다. 2007년 740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300배나 늘어났다. LA를 비롯해 세계 285곳의 세종학당에 입학하기 위해 대기하는 타인종의 수는 1만5689명으로 지난해 7840명에 비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어 배우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럴 때 한국어를 최소한 읽고 말하고 쓰고 들을 수 있는 한인들이 스스로 한국어를 더 익히고 자녀들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노력해서 'Byelingual'이 아니라 진정한 'Bilingual'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의 (213) 387-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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