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분쟁 때‘중재합의문’서명했다고 끝 아니다
2016-10-05 (수) 구성훈 기자
중재는 법원에서의 재판과 같이 중재자(Arbitrator)의 판결이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민사소송 절차보다 간소하므로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장점이 있어 많은 한인 비즈니스들도 선호하고 있다. 중재자는 일반적으로 은퇴 판사나 현직 변호사인 경우가 많고 분쟁 내용에 따라서 양자 합의하에 중재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중재판결이 나오면 관할법원에서 승인(confirmation)을 받아 일반 판결과 같이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주가 중재합의문에 고용인의 서명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노동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배형직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직원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경우 고용주는 적잖은 비용과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중재합의문을 활용하는 한인 고용주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하지만 중재합의문을 작성했다고 마음 놓고 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중재절차를 밟게 되면 고용주가 수천~수만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영세한 업체들에게는 현실적이지 않을 수가 있다. 또한 직원에게 회사 정책과 규정을 설명하는 ‘고용인 핸드북’(Employee Handbook) 안에 중재합의 내용이 있을 경우 고용인의 서명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집행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독립적인 중재합의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가주 항소법원은 중재합의문과 관련된 ‘Esparza v. Sand&Sea,Inc.’ 케이스에서 “고용인 핸드북 안에 포함된 중재합의 내용은 집행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용인 핸드북은 계약서가 아니며 핸드북 내용을 인정한다는 서명 역시 고용인이 중재합의에 동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일부 고용주들이 고용인으로부터 중재합의문 서명을 받아내기 위해 중재합의 관련 내용을 고용인 핸드북 안에 끼워 넣는 방법으로 얼떨결에 서명을 유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해원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고용인이 중재합의문에 서명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권리인 집단소송은 막을 수 없다는 연방 항소법원의 판결도 지난 5월과 8월 연달아 나와 한인 고용주들의 주의가 요망된다”며 “고용주와 고용주 모두 중재합의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조언했다.
중재합의문을 영어로만 작성하는 것도 고용주 입장에서 조심해야 한다. 영어미숙자가 근로자의 다수를 차지할 경우 특히 그렇다.
가주 항소법원은 모빌홈 단지 거주자들이 단지 부지를 소유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인 ‘Penilla v. Westmont’ 케이스에서 입주자와 부지소유주가 작성한 중재합의문이 영어로만 되어 있어 ‘절차상 양심적이지 못하다’(procedurally unconscionable)는 이유로 지난 9일 ‘집행 불가’ 결론을 내렸다. 단지 거주자의 3분의1이 영어가 미숙한 라티노들이기 때문에 합의문을 영어로만 작성한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결한 것.
한 고용법 전문가는 “‘Penilla v. Westmont’ 케이스가 직장에서 작성한 중재합의문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영어로만 작성된 중재합의문은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며 “앞으로 고용주들은 중재합의문을 어떤 언어로 작성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성훈 기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