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LA중앙일보] 발행 2018/05/16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8/05/15 20:21
이런 소송을 당하면 특히 식당을 하시는 의뢰인들은 식당에서 어떻게 종업원들에게 밥도 안 먹일 수 있겠느냐고 분노한다. 그럴 때마다 밥을 안 먹였다고 소송을 당한 게 아니라 식사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다거나 식사를 못하게 방해했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해드려도 이 항목만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신다.
이렇게 한국인들에게 밥 먹는 것은 최고로 중요하다. 몇천 년 동안 굶고 지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밥을 먹어야 하고 이제는 밥 먹고 살 정도로 풍요해졌어도 모든 만남은 밥 먹으면서 해야 한다.
한국 기업과 동업하려는 미국인이 서울에 가서 며칠 동안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도 같이 갔지만 정작 계약서에 서명도 안 하고 같이 하려는 일에 대해서도 별 언급이 없었다면서 의아해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에게 같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건 없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결국 그 계약은 성립되지 못했고 그 미국인은 왜 자신이 그 많은 시간을 밥 먹는 데 보냈는지 아직도 이해 못 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지인이나 모두 밥 먹으면서 공식적인 일을 처리해야 한다.
지난 4월27일 한국과 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면서 가진 만찬에 평양냉면 등 어떤 요리가 등장했는지를 보도한 한국 언론들은 정치 면인지 요리 면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핵화 과정이나 회담 내용보다 먹는 과정에 엄청난 중요성을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인은 낯선 사람과 밥을 같이 먹는 경우가 거의 없고 공식적인 결정을 밥 먹으면서 하는 경우도 드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과 만나 만찬하는 도중에 시리아를 공습했을 정도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복잡한 가주 노동법 준수보다 법이 요구하고 있지 않은 직원들에게 식사 제공에 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그 부분은 가족은 최소한 굶기지는 않는다는 한인 고용주들의 강한 자부심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핵무기 개발에 온갖 국력을 다 쏟은 뒤 이제 와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시도하면 정권유지는 최소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하고 있다.
오는 5월28일은 미국 메모리얼 데이이고 6월6일은 한국의 현충일이다. 그리고 6월25일은 한국전 발발 68년째다. 현충일마다 생각나는 분은 한 번도 뵙지 못한 큰아버지다. 큰아버지는 헌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셨다가 1952년 1월10일 돌아가셔서 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6.25 때 15살이었던 아버지는 인민군 의용대에 끌려가셨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셨고, 11살이던 어머니는 1.4 후퇴 때 천안에서 대구까지 걸어서 피난가시다가 얼어붙은 강에 빠져 돌아가실 뻔 하셨다.
60년이 더 지난 일들을 거론하면 평화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들 한다. 그러나 대한항공 격추, 아웅산 사건, 천안함, 연평도 등 수많은 북한의 도발이 최근까지 계속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습 3대째인 김정은이 이전 범죄들에 대해서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는 반발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 큰아버지를 비롯해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분들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 국가는 왜 지켜야 하는지 묻고 싶다.
오는 6월12일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중국 요리를 먹을지 햄버거를 먹을지 관심없다. 밥을 안 먹더라고 제대로 된 성과만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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