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활] 봉 감독의 '표준근로계약서'
[LA중앙일보] 발행 2019/05/29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05/28 18:40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계는 근로계약서의 개념조차 없던 3D 업종에 버금가는 힘든 바닥이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열심히 할리우드와 합작을 하고 할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표준근로계약서와 휴식 시간 같은 생경한(?) 개념이 도입됐다. 지난 2011년 충무로에 첫 선을 보인 표준근로계약서는 충분한 휴식 없이 열정만으로 일하면서 급여 수준까지 낮은 영화계 스태프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근 한국의 영화 산업 노사가 체결한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 원칙이다.
스태프는 근로 시간이 4시간일 때 30분 이상, 8시간일 때 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받는다. 그러나 제작 현장에서 이런 법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유명 감독은 영화 제작 도중에 스태프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이번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촬영장에서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노조 등과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 등에서 지난 2013년부터 최근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함께 일힌 경험이 있어 한국에서도 노동법을 지키기가 수월해 졌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이전 영화 '괴물'과 '살인의 추억' 때는 촬영 회수가 100회를 넘었지만, '기생충'은 77회차로 촬영을 마쳤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유럽에서 '설국열차'를 촬영할 때 배우조합과 일하면서 아역배우 보호를 위한 상세한 규정들을 배웠다고 한다.
봉 감독은 "밤 장면이 많았는데, 송강호 등 어른 배우들이 협조를 잘해서 아이들이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그들에게 우선권을 두고 촬영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관행들은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왔지만 한국 영화계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작품 출연 때문에 아역 배우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을 까봐 아역 배우들만을 위한 학교가 따로 있을 정도다.
봉 감독은 이번 작품을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근로 시간을 모두 준수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미주에서도 봉 감독의 '기생충'을 본받아 한국 지상사나 한인 회사들은 상사 퇴근할 때까지 눈치 보면서 오래 근무한다고 일을 꼭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노동법에 정해진 식사 시간, 휴식 시간 등을 잘 지켜 근무시키고, 쓸데없이 직원들을 잡아두지 말고 칼퇴근하도록 장려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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