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업체 노동법 위반 땐 발주업체도 공동책임
앞으로 트럭운전사를 고용하는 운송업체의 노동법 위반에 대해 이 업체로부터 물품을 배달받는 원청업체에게도 공동의 책임이 부여된다.
지난 22일 제리 브라운 가주 주지사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주 법안에 서명함에 따라 대형 도·소매업체는 물론 한인 관련업계도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법이 미칠 파장을 놓고 대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주상원 리카르도 라라(벨가든) 의원이 발의해 시행이 확정된 주법의 핵심은 트럭 운송업체의 ‘독립계약제’라는 고용 구조에 따른 트럭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자는 것이다.
운송업체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기사들은 직원이 아닌 ‘독립계약제’에 의한 개인사업자들이 대부분이다. 운송업체는 트럭 운전기사에게 정해진 계약금의 임금만을 지불할 뿐 오버타임 지급이나 각종 노동법 준수 부담에서 자유롭다.
24일 USA 투데이에 따르면 독립계약제가 관례처럼 굳어진 상황에서 노동법 위반에 따른 트럭 운전기사들의 소송 제기도 많아 법원의 지급 판결 금액만 지난 10년 동안 4,000만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문을 닫고 새로 다른 이름으로 업체를 오픈하는 방식으로 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수법을 쓰는 트럭 운송업체들 가운데 한인이 운영하는 곳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법에 따르면 지금까지 노동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고 법원의 지급 판결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트럭 운송업체의 리스트가 공개된다. 앞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트럭 운송업체에게 하청을 주는 도소매업체들은 향후 노동법 위반에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
이 법이 시행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한 한 한인 운송업체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독립계약자인 트럭 운전기사를 모두 직원으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인건비 등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한인 운송업체 대표는 “트럭 운전사를 풀타임 직원으로 고용하게 되면 인건비 상승에 종업원 상해보험(워컴) 등 비용도 동반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비용 상승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운송비용이 지금보다 40% 정도 인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이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지면 결국 한인 소비자들의 재정 부담도 그만큼 증가할 것으로 한인 트럭 운송업체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해야 하는 한인 업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법이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한 관련 업체들은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내용 파악에 나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법은 봉제업계의 노동법 위반에 원청업체인 의류제조업체가 공동책임을 지는 것과 같은 논리인 점을 감안해 트럭 운송업체의 이력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한 한인 식음료업체 대표는 “현재 거래하고 있는 운송업체에 노동법 위반 여부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라며 “검토 후 문제가 없더라도 노동법 준수에 대한 계획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추가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인마켓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후폭풍에 대한 대비를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주로 수입업체나 벤더들이 마켓에 물건을 공급하는 상황이지만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범법행위에 공동책임을 지는 경향이 전 산업계로 점차 확산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한인마켓 매니저는 “신생업체보다는 믿을만한 벤더들을 중심으로 거래처를 확보하고 벤더들의 사고에 대비해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도 검토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해원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하청업체에 대한 이력 관리와 모니터링의 중요성이 전 사업 분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용역 계약 전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