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생활] "당신 집 숟가락은 몇 개인가"
[LA중앙일보] 발행 2018/10/03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8/10/02 19:16
▶나이가 몇이세요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언제 미국에 오셨어요 ▶결혼은 하셨나요 ▶자녀는 몇 명이고 나이는 ▶어디 사세요 ▶고향은 어디세요 ▶교회 다니세요 ▶술은 좀 하세요 ▶골프 치세요?
미국 변호사라면 이 10개 질문 가운데 과연 몇 개나 물어볼까. 내 생각에 한인들은 이런 질문들을 통해 혈연, 지연, 학연 등을 확인하고 자기 편 찾기 과정을 밟아야 속이 시원한 것 같다.
미국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채용 인터뷰에서 아직도 미국에서 법으로 금지된 질문들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즉, '꼰대'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나이 묻는 동방예의지국형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디 사느냐" "결혼은 했느냐?" 등 업무와 상관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결혼을 했느냐?'가 업무와 관련 있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항변하는 웃기지 않는 상황까지 등장한다. 한국의 대기업 채용 인터뷰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여자 지원자에게 "왜 그렇게 살이 쪘느냐?"라는 명예훼손급 질문까지 등장한다. 한국 대기업의 미국 현지법인 인터뷰에서 과연 타인종 직원에게도 그런 개인사를 질문하는지 궁금하다.
미국 내 연방기관인 고용평등위원회(EEOC)에 따르면 인종, 출신 국가, 종교, 성별 및 성 정체성,
임신 여부, 장애, 나이 및 유전정보, 시민권 여부, 결혼 여부 및 자녀의 수 등에 대한 질문은
고용평등법 위반 및 차별 혐의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개인사 관련 질문들은
계속 된다.
업무에 대한 질문이 없거나 질문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가?
미국 회사의 채용 인터뷰에서는 100% 업무에 관련되거나 회사의 미래에 질문이 줄을 잇는다. 물론 한국 회사와 달리 인사(HR) 관련 직원들의 훈련도 잘 되어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 2017년 6월 공공부문에서 출신지역이나 학력을 묻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보면 학력이나 출신지역, 가족 관계뿐 아니라 사진과 신체 조건도 입사원서에 쓸 수 없게 했다. 즉 이름과 연락처 등 기본적인 사항만 적는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이나 경력 등은 적게 했다. 그런데 아직도 사진을 붙이는 이력서를 요구하는 한국 회사들이 많다. 사진을 이력서에 붙여야 한다고 말하면 후진국 취급을 하는 미국보다 몇십 년 늦은 만시지탄 시도지만 빨리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기 위해 가이드 북을 만들어 제공하고 인사담당자에 대한 교육도 시키기로 했다. 과연 정부가 이렇게 하겠다고 대기업의 몇십 년 된 타성이 언제나 고쳐질지 의문이다.
대기업만 이런 게 아니다. 지난해 언론보도에 따르면 몇 년 전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교수 공채에 미국에서 공부한 여성이 지원했는데 면접 심사에서 "결혼은 언제 하느냐?" "왜 한국말을 잘못 하느냐?"라고 물었고 그 뒤 합격 통보까지 했는데 지원자가 거절하고 미 동부의 최고 대학으로 가버렸다. 이런 상황을 보고 "채용을 위한 면접 심사 자리니까 그렇게 질문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시대에 뒤떨어진 반응을 보인 '꼰대'들이 많았단다.
한국인들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단지 직원 채용 과정이 아니더라도 서로 간에 불필요한 개인 정보를 물어보길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공과 사 구별 자체가 없는 것 같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농경사회에서 수천 년을 살아와서 그렇겠지만,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